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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의 기술

드라마가 취미라고 말하지 못한 이유

얼마 전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쉴 때 뭐 하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헬스를 좋아해 늘 운동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마땅한 취미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친구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그 질문은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뭐가 없진 않지만서도… 왠지 있는 그대로 말하기는 껄끄러웠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적당히 독서라고 얼버무렸다.

책을 안 읽는 편은 아니니까,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 싶었다.

사놓고 안 읽은 책만 산더미지만...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어딘가 찜찜한 뒷맛이 계속 남았다.

그건 말하자면 진실된 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가 그리도 어려워서 진짜를 말하지 못했던 걸까...

사실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취미가 뭐냐는 질문은 생각보다 꽤 자주 받는다.

어딘가에 프로필을 적거나 자기소개라도 할 일이 생기면

의례 취미가 뭔지도 묻곤 한다.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일이다. 누구나 취미 하나쯤 있다고 여기는 걸까.

생기부부터 이력서까지, 취미 비슷한 걸 적는 칸은 당연하다는 듯 항상 있었다.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나는 거기에 답하는 게 늘 어려웠다. 공란을 보고 있으면 막막한 마음부터 든다.

취미라는 건 뭘 말하는 걸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아니면 쉬면서 할 수 있는 일?

뭐, 쉴 때 하는 일 자체는 많다. 그중엔 유달리 좋아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걸 여기 적어도 되는걸까, 그런 생각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이건 뭔가.... 취미라고 내놓긴 좀 민망하지 않나 싶었다.

그럴 때면 나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 자리에 ‘영화 감상’이라고 적곤 했다.

영화는 왠지 남보기에도 썩 괜찮은 취미처럼 느껴졌다.

시네필이라는 그럴듯한 이름도 있지 않나.

뭣보다 영화 감상에는 부연 설명이 더 필요 없었다.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고 하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냥 그 적당함이 좋아서, 나는 영화를 취미라고 말해왔던 것 같다.

영화는 비교적 존중 받는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건 솔직한 답이 아니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지 많이 보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본 적도 없었다.

내가 정말 많이 봤고, 또 정말 좋아했던 건

다름 아닌 드라마였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를 참 좋아했다.

시작은 아마 초등학생 때였지 싶다.

평일 저녁 8시면, 거침없이 하이킥보겠다고 TV 앞에 앉았고

아내의 유혹을 보며 뒷목을 잡기도 했다. 어쩌다 그런 드라마(?)까지 본 건진 잘 모르겠다.

다들 그렇듯 시작은 아마 우연했을 테다.

틀어져 있던 TV에서 의도치 않게 접했지만 어느새 그 안에 한껏 몰입하고 있었다.

방아간 참새처럼 TV 앞에 앉았다

그렇게 챙겨보는 드라마가 하나씩 생겨났고, 언젠가부턴, 일상 속의 큰 즐거움이 되어 있었다.

밤 10시 전에는 무조건 자야 된다고 여겼던 어린 시절,

처음 그 금기를 깬 계기도 드라마였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하는 드라마가 진짜 재밌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참 많은 드라마를 봤다.

드림하이, 학교 2013 같은 학원물도 좋아했고, 자이언트, 선덕여왕, 동이 같은 대하극도 챙겨봤다.

주말 밤 10시에 KBS1에서 했던 대하사극 시리즈도 개인적으로 꽤 열심히 봤다.

대조영, 근초고왕, 광개토태왕이 방영될 땐 생전 안보던 KBS1을 매주매주 틀 정도였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별에서 온 그대>로 이어지는

SBS 수목드라마 황금기에는 1년 내내 수목에는 SBS만 봤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돌이켜봐도, 드라마 보는 것만큼 즐거웠던 일이 그때 또 있었나 싶다.

불 꺼놓고 드라마를 보던 모습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번도 드라마 보는 게 취미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이런 게 취미일 수 있나? 하는 민망함과 자격지심이 한 켠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 취미는 드라마 감상입니다”라고 하긴 뭔가 좀 멋쩍지 않나...

감상이라는 고상한 표현을 써도 그렇다.

뭐랄까 드라마는 그저 시간 때우기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다들 많이 보긴 하지만 그 이상은 없는 느낌이었다.

’어 나도 드라마 봐. 근데 그게 취미?‘ 이런 반응이 나올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좋다면 그걸로 족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묻는 취미의 의미는 그게 아니라고 느꼈다.

뭔가 생산적이어야 하고, 뭔가 그럴듯한 깊이가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게 없다면 취미라기보단

그저 시간 허비였다.

드라마는 취미의 조건을 통과할 수 있을까?

몇 번이고 되물었지만 쉽사리 그에 답하긴 어려웠다.

솔직히 드라마에 대단한 깊이는 없는지도 모른다.

많이 본다고 해서 뭔가 남는 게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드라마가 좋았다.

영화에는 없고, 드라마에만 있는 무언가도 분명 있었다.

설명할 자신이 없어 도망쳤지만

'드라마 그깟 게 뭐라고?' 하는 물음에 그럴듯한 답을 내놓고 싶었다.

그런데 차분히 돌이켜보면 그 실마리는 한 편의 드라마에 있었다.

<응답하라 1988> 블루레이

이건 내가 유일하게 구매한 드라마 블루레이이다.

이런 물건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다들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예전엔 이렇게 드라마의 DVD / 블루레이가 제작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공식 판매도 아니고, 팬들이 직접 수요 조사부터 해서 제작하던 꽤나 독특한 문화의 산물이다.

나도 응팔 블루레이 제작 추진 카페에 가입해 가수요 조사에도 참여했었다.

특전으로 이런 굿즈들도 준다

그래서랄까 사실 이 물건은 여러모로 참 비합리적인 구석이 많다.

일단 제작해달라고 애원부터 해야 하고, 제작되기까지 거의 1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

물건값은 또 어찌나 비싼지 2-30만 원이 기본 가격이다.

거기다 한정판 판매라 때를 놓치면 구하기도 힘들다.

내가 바로 그 케이스였다.

처음에 학생 신분에 너무 큰돈이라 못 사고, 1년 뒤에 뒤늦게 구하려다 아주 고역을 치렀다.

생전 안 하던 중고거래를 시도하다가 사기까지 당하는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결국 돈을 거의 두 배로 지출했다... 나름대로 그런 슬픈 사연이 있는 물건이다.

블루레이 플레이어도 중고로 업어왔다

그런데 그런 일을 감수할 정도로 이 물건에 엄청 대단한 효용이 있냐 하면 그것도 솔직히 좀 애매하다.

감독판 재편집과 각종 부가 영상이 들어있긴 하지만,

정작 본질이라고 할 드라마 자체는 사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오히려 이쪽이 더 불편하다. 오로지 전용 플레이어로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숱한 비논리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걸 산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이 드라마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좋은 드라마는 많았지만, 이 정도로 좋아한 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

인생 드라마라는 말을 쉽게 쓰고 싶진 않지만, 그 표현이 응팔에만큼은 아깝지가 않을 것 같다.

어쩌다 이 드라마를 이렇게나 좋아하게 된 걸까?

어느 시점에 좋아하게 된 건지 기억을 해보려 해도 막상 그 계기는 참 불분명하다.

뭔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논리적으로 따져가며 결정되는 것이 아니듯

그때 응팔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런 것이었다.

다만 돌이켜보면 응팔의 첫방을 보게 된 심리는 의외로 일종의 심술 때문이었다.

나는 사실 응답 시리즈의 전작인 응칠과 응사는 보지 않았다.

그다지 끌리지 않기도 했고

태어나기도 전 이야기라 공감하기 어려울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드라마들이 그만, 너무 잘 돼 버렸다는 점이다.

주변에서도 엄청나게 호들갑을 떨고 신드롬이라고 뉴스까지 도배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보면서, '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저리 호들갑을 떨지?'하는 묘한 반감이 마음 속에 스멀스멀 싹텄다.

이상한 심리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일단 안 보기로 결정한 드라마가 잘 되면 내가 틀렸다는 생각에 괜한 심술이 생긴다.

그리고 그 심술은 속편의 징크스마저 깨고 응사까지 잘 되면서 더 커졌다.

그래서 더더욱 이 악물고 보지 않았다. 이제 와서 보는 건 어딘가 자존심이 상했다.

요즘으로 따지면 두쫀쿠를 절대 안 먹는 심리라고 할까? 그런 심술이 그때 나에게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니꼬운 시선이 이어지던 와중에 새로운 속편으로 응답하라 1988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쯤 되니... 이번엔 한 번 봐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호들갑에 휩쓸려 보는 건 싫었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챙겨보는 건 또 괜찮을지도.

솔직히 궁금하긴 했다. 얼마나 재밌길래 저렇게 난리인 걸까.

한편으로는 나도 거기에 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반쯤은 도끼눈을 뜬 채로 응팔의 첫방을 본방으로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첫방이 생각보다 너무 좋았던 것이다.

어느새 나는 이미 완전히 무장해제되어 있었다.

첫 방에 뭐가 그리 좋았던 건지 솔직히 설명하라면 못 하겠다. 그저 빨려 들어갔다는 표현이 여기서만큼은 정말 사실에 가깝다.

너무 재미있었고, 드라마 안의 쌍팔년도의 풍경에서 뭔가 모를 강한 인상을 받았다.

1화가 끝나갈 때쯤에는 어느새 다음 화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막상 뭐 대단스러운 줄거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엄마들이 모여 수다나 떨고 가족들끼리 서로 투닥거리고 둘째가 서러움을 터트리는

말하자면 별거 아닌 이야기들이었다.

근데도 1시간 30분이 넘는 방영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푹 빠져서 봤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던 걸까? 차분히 돌이켜보면 이 드라마에는 어떤 압도적인 분위기 같은 것이 있었다.

마치 어딘가에 있을 법한 하나의 세계가 그 안에 온전히 구현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보고 나면 마치 내가 쌍문동 주민이라도 된 것 같은 그런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건

그 시절 풍경을 구현해 낸 다양한 소품들 그때의 문화를 보여주는 에피소드

무엇보다 진짜 쌍문동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나하나가 현실에 있을 법하면서도 또 존재하기 어려운 그런 것들이었다.

거기서 오는 일종의 친근감과 동경 같은 것이 있었다.

뭐랄까 간절하게 바라오던 무언가가 그 안에는 있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응팔이 방영하는 요일만 손꼽아 기다렸다.

본방을 보고 나면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리뷰와 분석글을 봤고,

다음 주를 기다리며 이전 회차를 몇 번이고 돌려봤다.

때로는 본방 때 놓친 부분을 보기 위해서였고, 때로는 어떤 장면이 너무 좋아서 다시봤다.

특히 좋아했던 건 6화의 마지막 부분. 첫눈과 함께 이문세의 별밤이 나오는 장면이다.

덕선, 선우, 정환, 보라, 택 5명의 얽힌 관계를 그 한 장면만으로 너무나도 아름답게 풀어냈다.

그 첫눈 오는 날의 정취는 아직도 응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다.

닳아 없어질 만큼 돌려 보고 나면 그때쯤 다음 방영 날이 돌아오곤 하였다.

일주일을 기다리는 건 정말 힘들었지만 한편으론 즐겁기도 했다.

매주 이렇게 기다리는 순간이 있으면 일상의 색채까지도 달라진다.

힘들거나 고역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금요일이면 응팔을 볼 수 있다라는 그 작은 사실이 위안을 주고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조금은 더 즐겁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사실 나에게 2015년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시기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학업에 대한 부담감이 점차 더해가는 것이 버겁기도 했고,

일상이 학교, 집, 학원의 반복으로 채워지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다가올 날들은 주로 기대가 되기보단 막막하고 걱정될 뿐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반항을 할 용기도 헤쳐나갈 실력도 조금씩 부족했다.

그저 하루가 끝나가는 늦은 밤 드라마를 보는 게 고작이었다.

드라마만큼은 매주 새로웠고, 또 기다려졌다.

그러니 그때 나에게 응팔은 내일을 기대하게 해주는 가장 명확한 이유였다.

그 때문인지 내게 2015년의 겨울은 응팔의 그 아날로그 감성으로 기억된다.

무채색이었던 그 시절에 매주 돌아오던 응팔만큼은 다채롭고 따뜻했으니까. 브라운관 TV 앞에 모여서 투닥거리던 그 풍경이 마치 나에게도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드라마에는 이런 면이 있다.

단순히 어떤 독립된 작품이 아니라, 나의 2015년 겨울을 응원하고 도와주었던 그런 친구 같은 모습 말이다. 이렇게 응팔은 그 시절 나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 응팔의 마지막 장면을 봤을 때, 나는 남몰래 한참을 울었다.

폐허로 변한 쌍문동과 울고 있는 덕선의 모습이 형용할 수 없이 슬프게 느껴졌다.

그 장면만 보면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나서 지금도 쉽사리 보질 못한다.

단순히 좋았던 드라마가 끝나서 슬픈 건 아니었다.

거기서 나는 마치 쌍문동에서 쫓겨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즐거웠지? 이제 이야기는 끝났으니까 그만 돌아가" 하고 우리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드라마 밖 현실에도 더 이상 그런 쌍문동 같은 곳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작별은 유달리 아프게 다가왔다.

한편으론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나는 쌍팔년도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20세기의 끝자락인 1999년에 태어났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시절에 대해서 향수도 추억도 전혀 없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응팔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정겹고 그리운 마음이 든다.

택이 방에 친구들이 뻔질나게 드나들며 라면 먹고 노는 그 모습은 왠지 낯설지만 동시에 익숙하게도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싶다.

지금이라면 과연 저렇게 모여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 같다.

그 별거 아닌 일이 어려워진 현실이 아쉬워서 그것이 살아있는 쌍문동을 동경했던 것 같다.

비록 그 시대를 공유하진 못 했지만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만큼은 나도 공유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응답하라 1988 블루레이 케이스에 음각으로 새겨진 쌍문동 일러스트
응답하라 1988 블루레이 디스크

이처럼 그 마음이 조금은 유별났기에 나는 단순히 다시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이 작품만큼은 내가 꼭 소장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조금은 시대착오적인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트리밍을 통해 보는 드라마는 언제까지고 남에게 빌린 것 같았다.

수많은 작품들을 다 가진 것 같지만 사실은 어느 하나 내 것은 없었다.

구독을 끊으면 그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것들이었다.

이 정도로 좋아하는 것이라면, 단지 그런 신기루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만질 수 있고 실감할 수 있는 무언가로 계속 곁에 남겨두고 싶었다.

드라마에는 형체가 없었지만 이 블루레이에는 있다.

그리고 이 안에는 여러 사람들의 애정과 마음 씀씀이가 고스란히 담겨있어 더욱 애착이 간다.

아무런 보수도 없이 블루레이 추진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인 팬들, 이것만을 위해 본편을 다시 재편집한 신원호 감독,

그리고 별거 아닌 블루레이 보관함에 조차도 곳곳에 애정의 흔적이 느껴진다.

쌍문동 일러스트가 음각으로 들어갔다

케이스 디자인도 여러 디테일이 많다

그렇기에 방에 놓인 블루레이를 볼 때면 이것이 이 드라마에 준 애정에 대한 증거이자, 보답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돌이켜보면.

취미라고 말하지 못했던 게 민망할 만큼 나에게 드라마에 대한 애정은 길고도 깊었다.

드라마가 객관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그건 여전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건 애당초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는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깟 게’ 아니었다.

내일을 기다리게 해주는 손에 잡히는 이유였고 일상을 견디게 해준 동력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취미 자격은 차고 넘친다.

다만 그럼에도 이 글을 기점으로 드라마가 취미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그런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날 것 같진 않다.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오해받는 것이 두렵다.

'드라마가 취미’라는 그 말 몇 자는 담지 못하는 맥락이 이토록 길고 방대하다.

이 긴 맥락을 알지 못한다면, 아마 앞으로도 누군가는 오해할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도 이따금씩 계속 망설일지 모른다.

다만 이곳에서만큼은 당당해지려고 한다.

나에게 있어 최고의 취미는 누가 뭐라고 해도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비록 아직까지는 이 작은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이 당당함이 언젠가 현실에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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